한문 학당 이끌어주신 스님과 선생님들 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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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서아빠 작성일07-08-03 11:48 조회4,845회 댓글1건본문
청강생으로 참가한 박인서 어린이 아빠 입니다.
서울에서 울며 떠나는 아이를 보내 놓고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3학년인데다 생일 까지 12월생이라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잘 해낼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인서 혼자는 도저히 보낼 수없어 친구네 아이들과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 아이들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만만치 않을 테니 이래저래 많은 무리를 감수한 결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담담하게 맞이하던 아이가 시간 다가오는 것을 초조해 하더니 급기야 2~3일 전부터는 툭하면 울어 잘 못 결정한 것이 아닌가 후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가만 두면 오후 2시까지 자고도 잠이 모자라는 아인데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지, 워낙 물을 좋아해 바다에 가서 무슨 일은 안생길런지, 청강생으로 갔다가 고생이 많았다는 후배 아들 경험담 까지 들은 터라 가족들의 염려는 끝내 씻지 못한체 아이를 보냈습니다.
인솔해가신 선생님 께서 울다 잠든 뒤 깨어나서는 잘 적응한다는 소식들 듣고 어느정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첫날은 사진이 없어 무척 아쉬웠습니다. 둘째날부터 인서 사진이 '집중적으로'(?) 올라와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애 완전 진지녀 그 자체다'는 등 농담까지 곁들 일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대학 시절 여름 수련회 갈 때마다 망설여지고 될 수있으면 피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올챙이 시절 생각 못하고' 아이에게 그 힘든 곳으로 내몰았으니 참 무심한 아빠입니다.
사실 저는 인서가 자다가 깨어나 울지 않을 까 그것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제가 6학년 때 엄마 곁을 처음 떠난 첫날 밤 악몽을 꾸다 깨어나 울었거든요. 아마 인서는 아빠바도 훨씬 강하고 씩씩한가 봅니다. 다행입니다. 늘 앞서야 하고 잘나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가하며 사는데 이번에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뒤처질 수도, 못할 수도 있다는 법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한문학당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프로그램과 훌륭한 스님들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있었지만 제 아이를 보내놓고 나서 그 진가를 새삼 느꼈습니다. 사진과 올라온 글 만으로도 아이들이 느낄 행복감을 함께 만끽했습니다. 무더위에도 끝내 웃음을 잃지 않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저는 인서를 낳고 난 뒤 한문학당을 새가 날기 위해 처음 날개짓을 배우는 시기라고 여겼습니다. 나는 법을 배운 새는 결국 어미 곁을 떠나겠지요. 아마 한번의 날개 짓에 아이는 환희와 함께 두려움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더 엄마 아빠 곁을 파고 들겠지요. 하지만 한번 맛본 그 단독 비행의 짜릿함을 잊지 못해 자꾸 자꾸 퍼덕이겠지요. 그러다 어느새 더 멀리 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먼 미지의 나라로 떠나갈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며 먹이고 공부시키면서도 막상 그날이 다가오면 기분이 어떨까요.
그래서인가요. 둘째는 보내기 싫어지네요. 결국 보내게 되겠지만요. 언니 없는 둘째는 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자꾸 너는 아기라며 껴안고 내보내질 않습니다.
그렇게 한문학당은 저에게 기쁨과 대견함 아쉬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정을 선사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인서를 맞이하러 우리 가족 모두 해남으로 갑니다. 내일은 미황사 인근에서 자고 일요일 아침 수료식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진환이 진경이 인서 모두 보고 싶네요. 이번 경험이 아이들에게 평생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인생에서 어떤 계기로 작용할 지 모르지만 엄마 아빠와 가족 외에 자신들을 그처럼 따뜻하고 헌신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은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들 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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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화님의 댓글
월명화인서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번도 울지 않았다면 서운하시겠네요. 하하. 아주 예쁘고 건강하게 잘 생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