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학당 10주년 축제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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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 작성일09-08-04 08:49 조회5,017회 댓글1건본문
정성, 감동, 행복을 느낀 2박 3일이었습니다.
발길 가는 곳마다 미황사 경내에서 느끼는 정성에 행복의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불교와 아이들 통해 미황사와 인연을 맺게 됨에 앞으로도 내내 행복하겠습니다.
첫날 조금 늦게 도착하였습니다.자하루에서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자원봉사자님, 스님의 웃음에 안심이 되었습니다.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이미 여러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여느 행사장보다 색다른 모습에 아이들도 지친 기색이 없이 자율적으로 행사에 참가하고, 스님께서 손수 아이의 손에 묶어주시는 오색실에 자신을 지켜줄 듯 아이는 행복해했습니다. 공양간 보살님들께서 얼음을 계속 부어주시는 냉녹차와 감자에 뜨거운 볕 아래 달려온 먼길의 피로가 가셨습니다.
미황사의 아름다운 저녁무렵 음악회가 열리고 박강수님의 맑은 노래를 들으며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등불을 들고 경내를 돌려고 할 때 들리는 '관세음보살'은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참 행복하다'라는 감동이 몇 번이나 될까.......어둠 속의 등불은 나자신도 세상의 등불이 되라는 뜻인듯 합니다. 따로인 우리가 하나로 물드는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새벽 5시에 예불을 하고 마당에서 아침의 태양, 바람, 달마산의 기를 마시며 선체조를 하였습니다. 공양간에서 오이를 씻고 간식을 담으면서 내 손이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미황사 옛길 걷기 시작 전, 방송으로 행여 챙겨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모자, 깔개, 가방을 꺼내와 챙겨주심에 또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라는 15조 김동현 조장님의 교육관과 깊은 마음을 배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 원석이는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을 숲길을 걸으며 손을 놓지 않았으며 물길이 나오면 동생을 보듬어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 지혜는 원래 있는데 어른들은 겉만 보고 잔소리하고, 공부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생전 처음 그렇게 많이 걸었습니다. 숲에서 바다까지.
스님들께서는 숲길을 미리 지나셨는지 흔적과 푯말이 걸려있었고 생태해설가 교수님들도 함께 동행해주시면서 설명을 받았습니다. 길목마다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간식과 주먹밥을 챙겨주시는 스님과 공양간 보살님의 정성에 불볕 더위도 싹 가셨습니다. 행여 포기하는 아이들, 다치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배려하시는 마음에 저 또한 어느 곳에 있든지 이런 베품을 실천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의 베품과 기도 덕분이겠지요.
바다에서 절로 돌아올 때 얼굴에 웃음 가득한 버스 기사님은 바닷물에 푹 빠진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도 좋다하시고 경내까지 운전해주시는 마음에 평소 미황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알았습니다.
한밤까지 음악회에서 아이들의 재능을 뽐낼 때 금강스님은 노래도 하셨습니다. 함께 박자에 맞추어 손을 흔들고 격려의 박수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 50분, 미리 일어나 108배를 하고 예불을 시작하였고 마당에서 선체조를 하였습니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아이들은 10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어른들은 방을 청소하였습니다.
점심공양까지 챙겨서 보내시는 마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휴가지에 와서도 미황사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번 축제에 애쓰신 모든 님들 감사드립니다.
축제에 서울에서 부산에서 먼 길 오신 분, 더욱 소중한 인연입니다. 10년 후 뵐 때까지 미황사에서 뵙던 모든 분들이 그대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냥 떠들었던 아이들이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돌아서지만
그 가슴에는
베품은
수많은 행복한 인연을 만든다는 진실이
배여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_()_
발길 가는 곳마다 미황사 경내에서 느끼는 정성에 행복의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불교와 아이들 통해 미황사와 인연을 맺게 됨에 앞으로도 내내 행복하겠습니다.
첫날 조금 늦게 도착하였습니다.자하루에서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자원봉사자님, 스님의 웃음에 안심이 되었습니다.대웅전 앞마당에서는 이미 여러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여느 행사장보다 색다른 모습에 아이들도 지친 기색이 없이 자율적으로 행사에 참가하고, 스님께서 손수 아이의 손에 묶어주시는 오색실에 자신을 지켜줄 듯 아이는 행복해했습니다. 공양간 보살님들께서 얼음을 계속 부어주시는 냉녹차와 감자에 뜨거운 볕 아래 달려온 먼길의 피로가 가셨습니다.
미황사의 아름다운 저녁무렵 음악회가 열리고 박강수님의 맑은 노래를 들으며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등불을 들고 경내를 돌려고 할 때 들리는 '관세음보살'은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참 행복하다'라는 감동이 몇 번이나 될까.......어둠 속의 등불은 나자신도 세상의 등불이 되라는 뜻인듯 합니다. 따로인 우리가 하나로 물드는 첫날 저녁이었습니다.
새벽 5시에 예불을 하고 마당에서 아침의 태양, 바람, 달마산의 기를 마시며 선체조를 하였습니다. 공양간에서 오이를 씻고 간식을 담으면서 내 손이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스님들께서는 미황사 옛길 걷기 시작 전, 방송으로 행여 챙겨오지 않은 아이들에게 모자, 깔개, 가방을 꺼내와 챙겨주심에 또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어린 동생들을 챙기라는 15조 김동현 조장님의 교육관과 깊은 마음을 배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 원석이는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3학년 동생을 숲길을 걸으며 손을 놓지 않았으며 물길이 나오면 동생을 보듬어 건네주었습니다.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 지혜는 원래 있는데 어른들은 겉만 보고 잔소리하고, 공부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릅니다. 생전 처음 그렇게 많이 걸었습니다. 숲에서 바다까지.
스님들께서는 숲길을 미리 지나셨는지 흔적과 푯말이 걸려있었고 생태해설가 교수님들도 함께 동행해주시면서 설명을 받았습니다. 길목마다 우리를 기다리시면서 간식과 주먹밥을 챙겨주시는 스님과 공양간 보살님의 정성에 불볕 더위도 싹 가셨습니다. 행여 포기하는 아이들, 다치는 아이들이 있을까봐 배려하시는 마음에 저 또한 어느 곳에 있든지 이런 베품을 실천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의 베품과 기도 덕분이겠지요.
바다에서 절로 돌아올 때 얼굴에 웃음 가득한 버스 기사님은 바닷물에 푹 빠진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도 좋다하시고 경내까지 운전해주시는 마음에 평소 미황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알았습니다.
한밤까지 음악회에서 아이들의 재능을 뽐낼 때 금강스님은 노래도 하셨습니다. 함께 박자에 맞추어 손을 흔들고 격려의 박수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쉬운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4시 50분, 미리 일어나 108배를 하고 예불을 시작하였고 마당에서 선체조를 하였습니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아이들은 10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어른들은 방을 청소하였습니다.
점심공양까지 챙겨서 보내시는 마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휴가지에 와서도 미황사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번 축제에 애쓰신 모든 님들 감사드립니다.
축제에 서울에서 부산에서 먼 길 오신 분, 더욱 소중한 인연입니다. 10년 후 뵐 때까지 미황사에서 뵙던 모든 분들이 그대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마냥 떠들었던 아이들이지만
무거운 가방을 메고 돌아서지만
그 가슴에는
베품은
수많은 행복한 인연을 만든다는 진실이
배여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_()_
댓글목록
행복님의 댓글
행복내년에 4학년이 되는 아이에게 이번에 다녀와서 '너도 내년에 거기를 다녀와야 졸업생이 되어 10년 후에 갈 수 있는거야'라며 꼬시는 중입니다. 형들과 행복한 추억이었나 봅니다.